연산군은 조선 제 10대 국왕으로,
반정으로 폐위된 조선의 두 명의 왕(연산군, 광해군) 중 한 명 입니다.
광해군의 경우, 과도 있지만 나름의 공도 존재하고
또 아버지인 선조에게 심하게 견제를 받았다는 상황도 있어
어느정도 재평가가 있으나,
연산군은 그 누구도 반론을 하지 않는 폭군으로 유명합니다.
연산군은 공포정치로 유명했는데,
그 공포정치로 인해 왕권은 가장 강했을 수 있으나
신하들이 나서서 왕을 갈아치우는 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연산군의 행동은 후왕들에게도 폭군의 기준점이 되었습니다.
이는 후대 왕들에게 반면교사가 된 점도 있지만
신하들도 후기로 갈수록 왕권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왕이 신하들의 힘을 축소하는 결정을 하려고 하면
연산군이 했던 행동이라며 오히려 왕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합니다.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는 남편인 성종이 첩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질투심을 느껴 첩의 방으로 들어가려던 성종과 실랑이를 하였고,
이 때 성종의 얼굴(임금의 용안)에 상처를 입힙니다.
당시로서는 굉장히 큰 사건으로
윤씨는 이 사건을 계기로 폐비가 되어 궐 밖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결국 쫓겨난 폐비 윤씨는 2년 뒤에 사약을 받고 죽게되지요.
연산군은 이런 불우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재위한지 10년이 지난 후,
연산군은 이 사건의 전말에 대해 알게 되고
어머니의 죽음을 복수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어머니의 죽음을 외할머니인 인수대비와
계모들이었던 귀인 정씨, 엄씨의 탓으로 돌려 죽이게 되는데요
귀인 정씨와 엄씨를 잔혹하게 고문하고 푸대자루에 넣은 후,
그들의 아이인(연산군의 이복동생) 안양군과 봉안군으로 하여금
푸대자루를 몽둥이로 두들겨 패서 어미를 때려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 후 연산군의 폭정과 사치, 향락은 심해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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